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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거대과학의 종말

NEW 거대과학의 종말

  • 박성숙
  • 2008-07-16
  • 43625

과 학기술 투자만큼 단기간 내 그 계량적, 직접효과를 입증할 수 없는 분야도 드물다. 또한 이 분야처럼 과잉 홍보로 인해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도 드물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그럴 듯한 설비투자가 가장 손쉬운 성과입증 대상이 된다. 세계 최초, 최대 규모라면 더욱 각광받는다. 속칭 \'거대과학(Big Science)\' 위주 과학기술 정책이 출현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핵융합장치, 양자가속기, 우주기지 건설 등 선진국도 부러워하는 고가 대형설비 건설 붐이 일고 있다. 이러다 보니 국가 연구ㆍ개발(R&D) 예산의 약 3분의 1을 거대설비 건설에 퍼붓고 있다. 이것만 있으면 내일이라도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일반 국민들을 믿고 있다.


이 에 반해 우수한 학자들의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순수 연구비는 이것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더구나 취소 불가능한 경직성 투자비 증대로 순수 연구비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거대과학 위주 R&D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점을 다 같이 인식해야 한다. 거대과학 중시 정책은 2차대전 당시 원자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그램의 산물로서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무시한 이미 지나간 정책모델이다. 속칭 제2세대 R&D 유형이다. 그 후 \'프랑스의 영광\'을 외친 드골 정부의 대형 원자력, 해양, 우주개발 사업이 있으나 이것도 옛 이야기다. 프랑스는 지금 기술혁신 능력의 부족과 인력 양성의 한계에 기인한 국가 경쟁력 저하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 대신 세계는 국가기술혁신(NIS:National Innovation System) 체제 구축과 정보혁명을 뛰어넘어 지식혁명, 창조혁명을 추구하는 속칭 제4대 R&D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성장동력 확충을 국가 R&D 사업의 기본목표로 설정하고 지난 5년 간 국가 총예산 증가율보다 훨씬 높은 연 9.7%씩 연구개발 예산을 늘려 국내총생산(GDP)의 0.77%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혁신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비율은 아직 선진국의 절반도 안 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사람 머리에서 나오는 기술혁신정보 창출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기술혁신능력은 반드시 과학기술논문색인(SCI) 숫자가 아니다. 생산요소의 결합효율을 높이는 창의적 아이디어이며 이를 산업에 응용하는 지식체계다.


프 랑스의 고민이 수학 등 기초과학 수준보다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의 산업응용능력 부족이다. 혹시 소규모, 다수의 창의성 발휘과제에 투자하기보다 소수 경직성 대형투자 중시 풍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은 아닐까. 그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우리나라 국가연구비 지출 구조는 대략 인건비와 설비투자, 연구사업비로 3분의 1씩 투자한다. 연구사업비 중 경쟁 베이스의 창의성 제고과제 예산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 부처에 따라 예산의 3분의 2를 정부출연연구소에 배정하고 있으며 장기 대형과제 비중도 비슷한 수준이다. 따라서 R&D 시장에서 경쟁구조는 허약하고, 투자 효율성은 낮아진다. 경직성 정부 R&D 사업은 일단 한번 확보하면 장기간 평가 없는 영역 독점을 누리게 된다, 소액의 기획설계비만 확보하면 그 후 몇 백억 원의 설비투자비가 자동 확보되는 사례가 바로 그것. 이러다 보니 우리 과학계에는 기관이기주의, 학문이기주의가 팽배하고 결국 \'연구관료주의\' 유발을 걱정하게 한다. 대형 장기사업 유치에는 정치논리가 개입되기 마련이어서 \'과학의 정치화\'마저 염려된다. 내년도 우리나라 정부 R&D 투자는 9조원을 넘고 민간 부담을 포함하면 22조원에 달한다. 따라서 이제는 양적 확대보다 투자효율성 제고 전략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장기, 고정투자에 치중하는 \'거대과학\'의 환상과 정치적 이용 욕구를 버려야 한다.

경직적 기술지도(TRM)에 의거한 예산 배정과 전문가에 의한 전문가 평가방식(Peer Review)도 개선해야 한다. R&D 시장에 새로운 기술과제 진입을 방해하는 모든 제도를 이제는 개혁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매일경제신문 7월 26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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