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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차 구술인터뷰: 김하진 교수

면담일자 2019.09.25 


구술시간 : 00:00:00


그 때는 학과가 넷밖에 없었어. 그런데 하여튼 1회는, 2회는 우리학교의 비전 보고 왔는데 예를 들면, 그 때는 내가 수학 선생이니까. 토요일날 공업수학 강의하는데 보강하러 다 들으러 왔어. 김내헌 교수가 1학년 가르치고, 나는 2학년 공업수학 가르치는데 내가 서울대학에서 공업수학 가르치는 것보다 한배 반을 가르쳤어. 다 따라왔다고. 근데 그 때는 잘되었던 게 뭐냐면, 나는 우리 학교의 그 옛날 불란서식 전통인데 교수가 2시간 강의하면 4시간을 조교가 가서 드릴 연습문제 푸는 거야. 아는지 모르겠으나 원천관 꼭대기 5층이 다 연습문제 푸는 방이었어. 그 방은 지금은 변했지만, 칠판이 앞, 좌, 우, 뒤 다 있었어. 학생들이 앞, 뒤, 옆칠판에 가서 다 문제 풀었다고. 


그래서 내 자랑 같지만은, 서울대학 학생보다 더 공업수학 강의를 했고, 그게 1회. 그 다음에 2회, 토요일날 내려와서 강의해서 내가 여기 동상 걸렸잖아. 그래서 그런지 1회, 2회 중에 대학교수 된 사람이 참 많다. 그런데 정말 서울대학생보다 수학을 더 열심히 가르치긴 했는데, 나도 물론 욕심을 냈지만 토요일 보강하면 다 나오는 거야. 그걸 한 반에 다 못 집어넣으니까 시간 나눠서 하는데, 그만큼 열심히 한 것 같아. 그리고 그 불란서식 수학 많이 하는 거, 나는 전에 반대했지. 그리고 서울대학보다 수학 많이 하는 게 말이 되냐 그랬는데. 나중에 불란서 가서 공부하니까 불란서에 있는 공과대학은 1,2학년 때 거의 수학이야. 그래서 그게 우리 1회, 2회 졸업생 중에 조영호 선생을 포함해서 교수들이 많이 나왔잖아. 카이스트 많이 갔어. 면학분위기가 그랬다고.

現) 소프트웨어학과 명예교수 



- 2004.08 퇴임 


- 1980.05 E.N.S.M DE SAINT-ETIENNE 박사 


- 1974.03 부임